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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 꿈일기를 쓰다가 여성성에 대한 책을 읽을 필요성을 느껴서 당장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그리고는 단숨에 다 읽었다. 몇몇 부분에서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흥미로운 책이었다.


     프시케의 결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조만간 남편이 바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행복한 만남이 아니다. 곧 다가올 남편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신부는 결혼식날 죽게 된다. 결혼이 바로 장례인 것이다. ... 그러나 현대인들은 결혼식 날 이런 의미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부들은 결혼식 날 눈물을 흘린다.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결혼과 동시에 자기 내면의 처녀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로버트 A. 존슨>에서


Marriage blue 현상의 원인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다. 


     프시케는 에로스의 아내이기를 원하고 에로스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따르려 한다. 사실 거의 모든 남성이 아내에게 이런 것을 바란다. ... 어떤 이유에서건, 여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프시케는 짧은 시기나마 이런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시기 여성은 남성에게 완전히 복종한다. 이것은 원형적인 차원이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결코 이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지만 잠시의 경험은 필요하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하던 원시 가부장적인 시대의 잔재들이다. 프시케는 이런 가부장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에로스는 그녀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프시케는 에로스의 뜻에 따르며 그들만의 낙원에서 만족하며 살아간다.  

     성숙하지 못한 에로스들은 이런 낙원을 만든다. ... 낙원은 원하지만, 어떤 책임도 아내와 의식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모든 남성의 심리에 이런 면이 조금씩은 있다. 남성은 진화를 요구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두려워 한다.

     프시케의 언니들은 여성 내면에 있는 외부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불평과 잔소리를 늘어놓는 존재이다. ...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프시케는 두 언니에 의해서 의식이 깨어나간다. 남편이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통해 의식을 확장할 때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 에로스가 등장할 때, 그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지만 프시케에게 에로스는 바로 죽음이다. 모든 남편이 그 아내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 프시케처럼 순수한 사랑과 부드러운 눈길로만 자신의 삶을 바랄본다면, 자기 안의 어두운 측면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어두운 면이 우리를 자기만족이나 순진한 낙원으로부터 떠밀어 내어 '진정한 깊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만든다. 

     융은 진화를 향한 요구는 그림자로부터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신화에서 드러나는 언니들의 이미지는 별로 사랑스럽지도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여성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프시케의 그림자로서 프시케의 의식을 진화하게 만든다.

     여성은 일생에서 일정 시간 동안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 혹은 내면의 신 아니무스의 지배하에 살아간다. 에로스가 만든 낙원에서 내면에 존재하는 의식적 깨달음에 대한 욕구는 침묵한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남성의 보이지 않는 통제에 완전히 굴복하고 산다. 마침내 여성이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의 지배에 도전하여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지켜보겠다"라고 선포한다면 이것은 한 여성의 내면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주요한 전기가 된다. ... 본능적으로 여성은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anims possession) 상태에서 깨어나면 지옥 같은 외로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면 등불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비추는가? 신화에서 에로스가 신이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여성은 자신의 의식의 등불로 남성의 가치를 비추어 드러내 주는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이 잘 적용되면 남성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 남성은 자기 내면 어딘가에 자신은 신이며 장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로버트 A. 존슨>에서

 

성차별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기서 남성, 여성은 실제 남녀라기보다 내면의 남성, 여성, 즉 아니무스, 아니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사랑하는 것loving'과 '사랑에 빠진being in love'것은 구분해야 한다. ...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평범함과 실패 그리고 그 사람이 지닌 장엄함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투사projection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투사의 안개를 꿰뚫으면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다. 땅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는 우리 개개인은 분명 경이로운 존재이다. 문제는 투사의 안개에 가려 상대의 깊이와 고귀함을 뚜렷이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환상이 아니다. 자신이 특별히 디자인하고 만들어 놓은 이미지나 역할을 상대방이 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은 상대의 고유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지속적이다. 오랫동안 유효하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서로를 쳐다보는 것은 지켜보면 이들은 서로를 넘어서 그 이상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를 너머 상대의 아이디어나 감정과 사랑을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 자체와 사랑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신, 에로스를 바라보는 프시케가 되는 것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최선책은 모든 것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고요함이 필요하다. 프시케가 시도하는 것이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추는 것이었다. 일단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극복한 다음 프시케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만일 자신의 꾀에 넘어갔거나 누군가 자신의 궤도를 완전히 부셔 버린다면 그저 멈추어 서라. 조용히 멈추는 것이 최선이다.

     융은 심리에서 아니마, 아니무스의 최대의 역할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재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여성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우세, 즉 남성적인 요소에 대해 복종적이던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무의식의 남성적인 요소는 가끔씩 여성이 외부세계와 맺는 관계를 부정적으로 통제한다. 여성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아니무스가 의식적 자아ego와 무의식의 내면세계 사이에 중재자로 활동하여 여성의 진화를 도와야 한다.

      프시케 신화는 여성이 남성들처럼 힘의 게임을 하지 않고도 자신에게 필요한 남성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프시케의 방식이 훨씬 부드럽다. 여성이 남성적인 힘을 휘두르기를 원한다 해도 남성적인 방식으로 힘을 얻을 필요는 없다.

     신화는 단지 남성에게 지나친 여성성이 방해가 될 수 있듯이, 여성에게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남성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할 뿐이다. ... 여성은 여성성이 주를 이루고 남성성이 보조를 해야 한다. 여성에게 남성성은 작은 부분이어야 한다. 우리는 생물학적 한계와 기능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로버트 A. 존슨>에서

 

사실 이 부분은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성차별적으로 들려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성차별적 사회에 사는 사람은 성차별이 없는 성평등이 완벽한 사회를 상상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남성에게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여성성, 여성에게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남성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성차별적으로 들리는 건 내가 지나치게 그것을 의식하는 것일지 모른다. 여성성, 남성성에 긍정/부정을 논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반감이 올라왔다. 

 

     프시케는 물 한 잔만 필요하다. 여성성의 방식은 한 가지만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그 한가지를 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이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에 한 잔의 물을 순서대로 채워야 한다. ... 높은 단계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질적인 만족을 이야기하며, 아주 적은 양으로도 충만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시인은 모래알 하나에서 세상을 본다고 노래한다. 지금 체험하고 있는 단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 안에서 즐기고 누릴 수 있다. 그런 다음 우리 앞에 다가오는 새로운 일들을 해나갈 수 있다.

      크리스탈 잔은 물을 채우는 그릇이다. 크리스탈의 특질은 매우 약하고 진귀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를 크리스탈 잔에 비유할 수 잇다. 거대한 생명의 강을 이 잔에 담을 수 있다. 거칠고 험난한 삶의 강에서 자아를 다룰 때는 크리스탈 잔을 다루는 것처럼 주의해서 아름답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의 잔은 산산이 부서져 버릴 수도 있다.

     독수리의 특질도 필요하다. 독수리처럼 정확하게 보고 파악하여 강물의 적소로 재빨리 접근해 바른 방식으로 잔에 물을 채운다. 자아가 무의식의 거대한 강에서 물을 길어 의식을 확장하려 할 때 한 번에 한 잔의 물을 길어 올리도록 충고를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라는 잔은 무의식의 강물의 힘에 놀라 산산이 부서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에 얽매여 사는 개개인이 땅에서든 강둑의 한 지점에서든 거대한 생명의 강물에 다가서려면 그 자체가 혼란스럽고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각 단계별로 하나씩 자신의 개성화individuation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강인함을 더해서 다음 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단계적 구분이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단계가 뒤섞여 한꺼번에 닥치게 되고 이런 네 가지 단계가 구분 없이 다가온다. ... 그러나 실제 이 단계에는 '조금씩', '서서히', '차근차근'이란 행위는 적합하지 않다. 이 부분에 있어서 융은 "자기 분석을 하다가 중지하려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마라"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 지하로의 여정, 밤바다의 항해를 위해서는 끝까지 완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꿈과 신화에서 죽음은 보편적 상징이다. 심리학적 죽음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성장과 변환을 확인하는 확실한 증거이다. 과거의 자신은 죽고 새로 태어난 자신이 등장한다. 이야기 초기의 프시케는 사랑스럽고 순진한 여성이다. 신탁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삶이나 성장 혹은 진화를 해나가기 위해서 소녀로서의 프시케는 죽어야 한다. 자신의 아름다움과 순진함과 순수함에 매료된 나르시스적인 그녀는 죽어야 한다. 그래서 추하고 어두운 측면의 자신과 개발되지 않은 자신의 잠재력을 다 포함하는 삶의 복잡성을 이해해야 한다.

     ... 어떤 삶이든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성공과 실패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프시케가 한 가지도 실패하지 않고 과제를 완벽하게 해냈다면 프시케는 고통을 모르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실패는 프시케가 인간임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들에게 모든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실패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잇다.

     ... 완전함completeness이란 실패를 포함한다. 프시케는 여정의 마지막 지점에서 실패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그림자shadow를 갖고 있는데 가끔은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그림자가 우리를 구원한다. 프시케가 상자 뚜껑을 열었을 때 아름다움의 묘약은 그 안에 없다. 죽음의 잠이 있을 뿐이다. 프시케가 계속 탐구해야 할 페르소나persona가 있을 뿐이다. 현재 그녀를 위한 아름다움은 곧 죽음이다.

     ... 열 번째, 숭고한 시간이다. 드디어 깨달음을 얻는다. 평상복을 입고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좁은 길을 걷는다. 이 사람의 모습이 다른 농부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밝음과 조이joy가 이 사람을 따른다. 이 사람이 지나는 길에 모든 나무들이 꽃을 피운다. 이 열 번째 이미지가 바로 개개인 여성이 도달할 수 있는 조이와 기쁨의 상태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은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있다. 또 여성은 아름다운 비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모든 여성의 노력의 결실은 바로 조이joy와 엑스타시ecstacy다.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 로버트 A. 존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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